다양성 시대
상태바
다양성 시대
  • 서상용 기자
  • 승인 2020.02.13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올해부터 공익형직불제가 도입된다. 벼농사와 대농중심의 직불제도가 논밭 동일적용과 함께 영세소농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다. 소농에 지급되는 금액이 여전히 농가당 월 10만원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지만 대농중심 농업체계 변화와 함께 한국농업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벼농사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변동형 직불제가 폐지되고 쌀값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사라졌다. 여기에 쌀생산조정제 또한 종료되었다. 올해 쌀농사는 위기다. 정치에서 더 이상 쌀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94년 UR협상 이후 한국농업의 중심 화두는 영세성 극복이라는 규모화였다. 수입개방이 시작되고 정부는 한국농업의 대안으로 규모화를 밀어붙였다. 26년 동안 진행된 규모화 정책으로 인해 농업인구는 급격하게 감소되었고 그 결과 농촌소멸이 대부분 농촌지역의 현실적 모습이 되었다. 농토가 비좁은 한국에서 규모화는 한계가 분명했고 정부 요구대로 농업의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농산물 값은 폭락했으며 중소농은 강제 퇴출되었고 이제는 규모화된 대농들의 생존권마져도 심각하게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규모화 정책으로 파생된 농업문제는 농업에 국한되지 않았고 지역을 통째로 삼켰다. 정치는 이제 농업만 볼 수 없게 되었고 파생된 결과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공익형직불제를 내세워 농업의 구조조정을 제기하고는 있지만 한국농업은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중이다.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애써 포장중이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26년간 진행된 규모화 정책에 대한 평가도 반성도 없기 때문이다. 농업정책의 중심은 규모화다. 여전히 농정관료들은 규모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모화 정책의 반성과 평가 없이 농업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지금 공익형직불제 논의가 표류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아직도 대부분 농정관료들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농업에서 규모화가 앞면이라는 이면은 획일주의다. 규모화가 근본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량생산과 획일주의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성장은 소비자들의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입장과 태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먹거리의 풍요로움이 이어지고 소비자인 국민은 공급자들이 던졌던 대량생산과 획일주의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90년대 초 한국 쌀을 민족의 생명줄로 여겼던 애국주의는 이미 국민 마음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국산이라는 묻지 마 애국심이 사라지고 국경을 넘어 농산물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값에서 가치로 농산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중이다. 농업에서는 획일주의가 위기로 몰리는 중이다. 대량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유통체계가 가격폭락이라는 악재 앞에 심각하게 흔들리는 중이다. 대량생산과 획일주의는 가격폭락을 정당화시켜내고 있다.

농업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규모화 시대가 공급자 중심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소비자 중심의 시대다. 소비가 생산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대량생산과 획일주의를 넘어 가치와 철학을 농업에 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 시대의 개막이다. 더 이상 대량유통체계에 얽매일 수 없으며 직거래가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이제 화두는 다양성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