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일로성당·격납고·방공포대 등록문화재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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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일로성당·격납고·방공포대 등록문화재 지정한다!
  • 서상용 기자
  • 승인 2020.03.05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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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일로성당, 근대 석조건축 시공특징 잘 간직
일제침략 군시설, 현경 격납고·방공포대 전남 유일
무안군, 보존·활용 위해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추진

무안군은 우리지역 내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활용하고자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안군은 무안 천주교 일로성당, 현경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비행기 격납고 6기, 방공포대 1기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지난 1월 조사용역을 완료했다.

군은 문화재등록을 신청하기 위해 소유자를 면담하고 앞으로 도 문화재위원 자문을 받은 뒤 등록신청서 및 보존관리 활용계획서를 문화제청에 제출해 올 10월 안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커 지정, 관리하는 문화재.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건설·제작·형성된 건조물·시설물·문학예술작품·생활문화자산·산업·과학·기술분야·동산문화재·역사유적 등이 주 대상이다. 등록 주체는 문화재청장이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편집자 주)

일로성당
일로성당

◆천주교 일로성당…석조건축 시공특징 잘 간직

천주교 일로성당은 1952년 5월1일 목포 산정동 성당의 모란(T, Moran, 안) 신부가 임시로 설치한 일로공소를 계기로 시작된 성당이다.

그 후 1956년 5월10일 일로성당으로 승격됐고, 현재의 본당 건물은 1958년 10월에 지어졌다. 경내에는 본당 외에 사제관, 사무실, 수녀원 등 이 있다.

본당은 단층 석조 건물로 내부 천장은 최근에 리모델링이 되었으나 기본 석구조만큼은 건립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로성당은 건축역사 및 구조, 양식 등에 있어 근대기 이 지역 성당건축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당시 석조건축의 시공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국가 등록문화재 신청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8년 일로성당 상량식
1958년 일로성당 상량식

일로성당은 일로읍 소재지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서측만 제외하고 부지 삼면이 약 8m 도로에 면하고 있으며 남측이 정 출입구이고 북측에도 부출입구가 있다. 부지는 남북이 약 80m이고 동서 측이 약 64m인 장방형이다.

본당 평면은 가로 11,29m, 세로 36,9m의 긴 장방형 건물이다. 중간 4곳에는 고해실 등이 있는 돌출부가 있고 후면 좌측으로도 증축 형식으로 이어진 부속실(성체조배실)이 있다. 정면은 특별한 장식이 없이 박공부가 그대로 드러난 단순한 구조다.

건축구조는 석재를 사용한 조적식으로 전면 진입부만 2층 형식이고 그 외는 모두 단층이다. 지붕틀은 ‘ㅅ자’형식의 목조트러스 구조로 목재는 수입재 나왕을 사용했다. 상부 마감은 서까래 위에 1치 두께의 판재를 대고 방수와 단열을 위해 기름종이(당시 ‘고무매트’라고 부름)를 깔고 그 위에 두꺼운 골함석을 올렸다. 현재는 최근에 나온 강판으로 보수되어 있다.

일로성당을 건축한 손양동(1916~2016) 씨는 신안 비금에서 출생한 후 바로 목포로 이주해 사망할 때까지 목포에 거주했다.

젊어서부터 토건업에 종사했고 주로 석공사를 많이 했다. 그는 일본 건축업자(坂本吉三郞) 에게서 기술을 배웠으며 해방 후에는 직접 (대동토건)大東土建을 운영하기도 했다. 해방 후 그가 지은 대표적 건물로는 구 목포사범학교 본관(1950)을 비롯해 목포 경동천주교회(1954), 완도 수산고등학교 본관(1954), 일로 천주교회(1958), 무안 천주교회(1957), 목포 북교동천주교회(1958), 목포 산정동 천주교회 및 성콜롬방 병원 부지 석축공사(1961)등 많은 건물이 있다.

현경면 송정리 전투기 격납고
현경면 송정리 전투기 격납고

◆일제강점기 전투기 격납고…전남지역 유일

일본이 전남 서남해안 일대를 태평양전쟁 말기 군사 거점지역으로 잡아 제주도에서처럼 지하벙커, 비행기 격납고 등을 무안군 현경면 일대에 건설했다. 전남 서남해안 일대는 제주도와 함께 연합군이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일제가 건설한 격납고가 현재 6기가 있으며 건립 시기는 1943년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로 추정된다. 현재 모두가 개인 사유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지역의 유일한 일본군 전투기 격납고다. 흔히 볼 수 없는 격납고라는 존재만으로도 관찰 및 보존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무안군에 2곳에 군용비행장을 건설했는데 한곳은 현 망운면에 있는 무안국제공항 자리이며 다른 한곳은 현경면 평산리 일대다. 망운 비행장은 당시 건설이 완료돼 잠시 사용을 했었고 현경면 비행장은 건설 마무리쯤에 전쟁이 끝나 완성이 되지 못했다.

송정리 전투기 격납고 내부
송정리 전투기 격납고 내부

항공사진 측정 상 미완성 공항 활주로 길이는 약 2.15km, 망운공항은 약 1.8km로 나타났다.

당시 비행장 건설에는 많은 무안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됐다. 그 시기는 1943년에서 1945년 해방 직전까지였다. 이처럼 무안군 지역에 일본군에 의해 군사비행장을 건설했으며 그와 함께 비행기를 보관하기 위한 격납고도 건립했다.

전면 가로 15~20m, 길이 14~16m, 높이 3m 내외의 타원형인 격납고는 생긴 모양의 특수성으로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활용 면에서도 이벤트성 농산물 판매장, 공연, 청소년 캠프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현경 격납고와 유사한 남제주 격납고가 2002년에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 된 바이 있다. 이 보다는 늦었지만 무안 격납고도 역사 및 구조적 측면에서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 필요성이 있다는 평가다.

현경면 방공포대
현경면 방공포대

◆현경 방공포대…일제 침략 중요 군사시설물

현경 방공포대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군사비행장 근처에 축조한 전쟁관련시설로 건립연대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말엽으로 여겨진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특별히 사용을 하지 않고 다만 바로 인접한 민가의 창고로 한때 사용했으나 현재는 비어있다.

방공포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조성돼 있는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산지 등 장애물이 없어 당시 하늘을 감시하는 데 좋은 위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방공포대는 반 지하 형 정방형 구조물로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지하 내부는 중앙에 내경 1.33m의 복도를 두고 양 측면으로 같은 규격의 4개의 실(3.290m×2.290m)이 꾸며져 있다.

방공포대는 전반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시설답게 구조가 매우 육중하고 단순하다. 현재까지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방공포대 내부
방공포대 내부

이 구조물은 2차 세계대전 말엽에 일본인이 축조한 군사시설로 일본의 한국침략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군사시설물이다. 바로 근접해 똑같은 방공포대가 있었지만 2018년도에 철거 돼 현재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공포대다.

일본의 한국침략을 보여주는 남부지방의 유일한 포대로서 보존가치가 매우 크고 축조 당시의 모습을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 등 시급히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역사적 교훈장소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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