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촛불집회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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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촛불집회에 다녀오다.
  •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장
  • 승인 2019.10.1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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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지난 10월 5일 서초동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절친 40대 몇이서 검찰개혁에 뜻을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준비되었다. 무안군에 시민사회단체가 거의 유명무실화된 현실에서 누군가 나서는 사람이 필요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려내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유도했으며 재정문제 또한 참가자들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

우리 딸을 포함한 10대 초등학생 다섯 명 포함 30대를 제외하고 80대까지 총 23명이 함께 출발했다. 현장에서 2명이 더 결합해 25명이 함께 했다. 검찰개혁을 위해 말 그대로 남녀노소의 전 연령대가 함께 했다.

10대들이 함께 참여한것은 민주주의와 사회역사 교육을 대하는 40대 부모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아이들이 책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체험을 통해 사회역사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딸에게 자연스레 제안했고 궁금했던 궁금증을 참여를 통해 해결했다.

30대가 빠진 것은 농촌지역 후계인력문제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다행히 20대 청년농부가 한명 참가했다. 지금 농촌지역은 30대와 20대를 거의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도시로 떠나가고 해가 갈수록 고령화는 심각하게 치닫는 상황이다. 농업은 몰락으로 치닫고 농촌지역은 붕괴되고 있다.

집회 두시간전 서초동에 도착했다. 이미 검찰청 앞 사거리 중 예술의 전당 편을 제외한 나머지 거리가 촛불시민 인파로 가득했다. 예술의 전당 편도 무안일행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촛불시민들로 가득 찼다. 3년 전 박근혜 탄핵정국 당시 촛불집회와 비교해 다른 점은 소위 진보운동단체들의 깃발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집회에서 발현된 촛불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시민들은 마을별 동별 동아리별 깃발을 들고 2,30여 명씩 무리를 지어 집회에 참가했다.

무안참가단 처럼 연령대가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고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노인참가자가 90%가 넘었던 광화문에서 진행된 보수단체의 집회와는 많이 비교되었다. 또한 너무도 무질서한 과거 농민집회와도 많이 비교되었다. 시민들은 너무도 질서정연했고 주체 측의 진행에 잘 따라주었다. 집회에서 술병이 사라졌고 대신 신나는 율동과 흥이 집회를 달구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집단으로 발휘되었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처음 본 역대급 수많은 인파보다 알아서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시민들의 높은 집회문화가 온몸을 전율케 했다.

보수단체에 의해 일그러진 태극기를 바로 세우자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 이후 한국 내 친일세력의 준동은 극에 달하고 있다. 친일세력은 태극기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농락하였다. 대한민국은 친일이 아닌 자주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나야 마땅하다. 태극기는 자주독립의 상징이지 매국의 상징이 아니다.

보수언론과 야당은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촛불시민들을 극력 문재인 조국 지지자들로 매도하는 경향이 높다. 촛불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해방 이후 척결되지 못한 친일카르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다. 뼛속까지 친일로 무장된 자유한국당과 이에 동조한 보수언론 그리고 검찰의 친일카르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며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염원의 표출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정치세력의 정치력에 대한 항거이다. 국민의 대변자들인 정치세력들이 자기역할을 방기한 것에 대한 국민적 회초리다. 촛불은 멈추지 않으며 촛불은 역사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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