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농정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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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농정에서 배우자
  •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장
  • 승인 2019.11.06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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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정부가 미국 트럼프대통령 요구대로 농업분야에서 개도국지위를 포기했다. 농민들 또한 한국이 선진국이길 바랄 것이다. 한국농정은 선진국 농정과 무엇을 다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도국 지위 유지, 포기를 떠나서 농정 선진화는 문재인정부가 꼭 실현해내야 할 과제이다. 페이스북 친구인 경남 산청거주 하만연 님이 말하는 독일농정이 한국농정에 좌표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하만연 님이 전하는 독일농정’ 선진국 독일 농민들도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농가당 연평균 농업소득이 2천만 원 밖에 안 된다. 그중 50% 이상은 세금으로 나간다. 한국 농민의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한국 농민들과 독일 농민들의 생활은 차원이 다르다. 독일 농민들은 농촌을,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기본생계를 국가에서,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있다.

어찌 보면 기본소득제나 마찬가지인 직불금 정책으로 농업 소득만큼 부족한 생활비를 보전해준다. 농민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믿고 농촌을 잘 지키고 산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철칙과 같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한줄 한줄이 다 금과옥조 같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사를 크게 짓거나 돈을 많이 벌려고 무리를 하지 않는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 2% 밖에 안 남은 독일 농민들은 독일 국민의 60%가 사는 농촌을 사람이 살 만한 생활공간으로 보전하고 보호하는 일에 오직 집중하면 된다. 자기의 자리만 그대로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

이렇게 독일의 농정이 궁극의 목표로 삼는 지상과제는 그저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또는 돈 되는 농산업’이 아니다. 농민도 사람 꼴을 하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생활농촌을 지향한다. 그 소박하지만 소중한 ‘농(農)’의 철학과 가치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실천하는 데 독일 농정당국은 매진하고 있다.

물론 첨단기술농업이니 농식품가공이니 수출농업이니 ‘돈도 되는’ 농업전략과 정책이 없는 게 아니다. 그건 자본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일부 기업농이 할 일이다. 대다수 중소농이 함부로 덤벼들 영역이 아니다.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 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그런 독일 농정의 현장에서 나는 계속 감동하고 감탄했다. 농민의 삶을 돌보고 지키려 애 쓰는 이 국가의 도덕성이, 이 정부의 책임감이, 이 국민들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양식’이 놀라웠다. 결국 신뢰, 협동, 연대 같은 철두철미한 사회적 자본의 힘이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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