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안뉴스 칼럼]사람 사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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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신안뉴스 칼럼]사람 사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무안신안뉴스 기자
  • 승인 2021.05.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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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마을행복디자이너 어성준
전라남도마을행복디자이너 어성준

2011년 가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경매계에서 한통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알고 보니 우리집에만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200세대 전체에 배달되었던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임대사업자의 부도 등으로 인해 경매가 개시되었으니 임대보증금에 대한 배당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은 시작됐다.

부도난 공공임대아파트의 해결방법은 세 가지.

첫째는 임대사업자의 요구대로 지금 상태 그대로 분양을 받는 방법이다. 사실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한 관리감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민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경매가 개시된 이후, 뒤늦게 찾아온 임대사업자측에서 제안했던 달콤한(?) 제안이었다. 본격적으로 경매 개시되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말로 겁을 주면서 말이다.

둘째는 200세대의 각 세대가 각자 사는 집을 알아서 경매로 낙찰받는 방법이다. 이 선택은 가장 저렴하게 낙찰 받고 싶은 입주민과 적당히 낙찰 받아서 이문을 남겨보려는 세력들 사이에서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비싼 값에 낙찰 받게 되거나 아예 낙찰 받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셋째는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임차인보호를위한특별법”을 개정해 보호를 받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주민들 사이에 약간의 대립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하고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던 우리는 법 개정을 선택하고 국회로 갔다.

그렇게 만 4년간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를 틈만 나면 올라가게 됐고 우리를 찾아와 손을 내밀어 준 부도공공임대아파트의 성지(?) 충남 공주의 덕성그린시티빌 주민들 그리고 주거권실현을 위한 주민연합 관계자들과 함께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주민들과 연대해 이 문제를 전국적인 사안으로 부각시키고 힘을 모으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나중에 활동을 마치며 정리해보니 대략 지구를 두 바퀴 돌 수 있는 거리였다.

일반법도 아니고 특별법을 개정해내는 4년간의 과정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법적인 근거를 찾아와 준 인터넷팀, 우리와 같이 힘을 합할 전국의 부도난 공공임대아파트 주민을 찾아다니는데 교대로 운전을 맡아준 차량봉사팀, 부도난 아파트를 살려보겠다고 임차인대표회의를 구성하고 국수를 삶아 동네잔치(?)를 겸해 주민들과 나눠먹는 것으로 출범식을 진행하고 각종 행사의 잡무를 소화해준 부녀회, 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신 노인회 등, 주민들은 각자의 재능과 역할에 맞게 손을 넣어주고 함께 도와준 주민들의 단합된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아파트가 부도나기 전에는 아파트에 또 마을에 전혀 관심 없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위층 소음에 코를 씩씩 불었던,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던 아파트가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서 형님으로 어머니로 누님으로 동생으로 이웃사촌이 됐고 지금은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마을로 변해있다.

그렇게 조직된 주민들의 역량을 토대로 전라남도마을공동체활성화사업에 선정돼 3년간 3500만원을 지원받아 마을청소부터, 마을벽화, 마을학교, 작은도서관 등을 만들고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함께 진행한 결과 2019년 12월 광주 KBS에서 주최한 좋은동네 밝은이웃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활성화 된 마을공동체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돈으로 살수 없는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주민 모두가 좋은, 사람 사는 맛을 느끼며 주민들이 마을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다.

그 주민들이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이른 아침 마을 어머님들과 마스크 쓰고 호미 들고 마을 앞 풀을 뽑는 동네 울력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주인은 내 집 앞의 풀을 뽑지만, 손님은 내 집 앞의 풀을 뽑아달라고 민원을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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