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의 먹거리 이야기(2) 풀로 키운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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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호의 먹거리 이야기(2) 풀로 키운 소고기
  • 무안신안뉴스 기자
  • 승인 2022.06.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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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무안신안뉴스는 2022년을 맞아 본지 칼럼니스트인 정영호 씨의 ‘먹거리 이야기’를 연재한다. ‘정영호의 먹거리 이야기’는 남도의 전통 맛과 먹거리를 찾아 체계화하고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코너다.(편집자 주)

배합사료 없이 풀로 키우는 홀스타인

몇 해 전 캄보디아 여행에서 캄보디아 소고기 맛이 궁금해 가이드에게 요청해 현지 소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논에 벼를 베어내고 나서 소를 방목하거나 묶어서 기르고 있었다. 소들은 살이 없고 말 그대로 삐쩍 마른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소에게 주는 배합사료는 캄보디아의 경제적 상황으로는 너무 비싸서 소에게 먹이지 않고 오로지 풀에 의존해 소를 키우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80년대 말까지 소를 들판이나 초원에 묶어 풀을 뜯겼던 풍경은 일상적인 농촌의 모습 중 하나였다. 여름에는 풀이 있는 곳에 묶어두고 풀로 소를 키우고 겨울이면 쇠죽을 쑤어 소를 키웠다.

캄보디아에서 맛본 소고기 맛은 마블링이 전혀 없는데도 잡냄새가 없고 담백한 맛이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질긴 맛은 아니었다. 지방 맛이 중심인 한우와는 사뭇 다른 고기 맛이었다. 캄보디아에서 풀로 키운 소고기 맛이 궁금했던 것은 한국에서는 배합사료로 비육된 지방이 많은 소고기 맛을 최고로 여기고 생풀을 먹이면 누린내가 나고 고기가 질겨지며 지방이 누렇게 되기 때문에 생풀로 키우는 것을 거의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기후위기,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이제 20%대로 추락했으며 곡물 자급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가축 사료의 절대적 수입의존도에 있다.

한국축산업의 위기는 물론이며 인플레가 심화되고 이것이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우소고기 등급제의 문제를 떠나서 자급에 의한 한우사육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 사육에서 자급을 실현할 대안은 곡물 재배를 늘리는 것이 아닌 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이라는 식량 위기의 대안이 풀로 소를 키우는 것이다.

2년 전 홀스타인 3개월령 암송아지를 구매해 21개월을 방목을 겸한 풀 사료로 사육해 이번에 도축했다. 1년 전 소비자들의 사전펀드를 통해 사육비용을 선 조달하고 이후 고기로 돌려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행히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펀드가 잘되었고 이번에 보답하게 됐다. 이번 판매는 실험적 가치가 크다. 우선 고기의 품질 보증이 되어야 한다. 홀스타인을 사육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우려는 소에게 생풀을 먹여 키우면 고기가 질겨지거나 누린내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자칭 한우고기 전문가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블링이 없는 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왜 육우인 홀스타인을 키우냐는 항의도 수차례 받았다. 한우고기는 민족의 고기고 육우는 마치도 외래종 또는 수입품으로 취급되었다. 여기에 홀스타인 고기는 맛이 한우와 비교해 너무 없다는 지적도 수없이 이어졌다.

홀스타인 암소를 선택했던 이유는 먼저 가격의 저렴함에 있었다. 한우 송아지 가격의 1/5로 사육 부담이 현저하게 줄었다. 다음으로 풀을 먹고 자라는 홀스타인의 효율성이었다. 한우와 비교해 풀 사료에 대한 효율성이 좋았다. 풀을 먹고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다음은 온순한 성질로 사육하기에 수월했다. 여기에 송아지 원가가 작아 고깃값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홀스타인은 방목 사육하고 논과 밭에 목초를 재배해 베어다 주는 방식을 겸했다. 돼지 방목장으로 쓰였던 2천여 평의 방목장은 소방목장으로 변모되어 풀이 자라면 소들이 풀을 뜯게 만들어 주었다. 목초는 생풀과 반건조, 완전건조, 싸일리지 등으로 먹였다. 주된 풀은 라이그라스와 케나프, 피 등이었다. 축사에서는 소똥 냄새가 거의 사라졌고 소들은 초원을 누리게 되었다. 소들이 초원을 뛰노는 모습은 평원한 한 장의 그림과 같았다. 수많은 방문객의 지지와 응원이 이어졌다. 물론 의심하며 초 치는 이들도 매우 많았다. 소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사육 21개월 만에 소비자들에게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체중은 550kg으로 배합사료에 의존하지 않고 키워냈는데도 좋은 성적을 내었다.

첫날 앞다릿살과 내장, 뼈 등 부산물이 나왔는데 생고기의 특징은 우선 고기에 수분이 적고 밀도가 높으며 잡냄새가 없었다. 생고기를 먹는 순간 안도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호평을 주었다. 단, 구이용은 질길 거라는 단서를 달면서. 간은 20여 년 식육점을 해 오신 사장님의 평을 그대로 옮기자면 ‘저렇게 단단하고 싱싱한 간은 생전 처음’이라고 하셨다. 간은 단단하며 향이 진했다. 대만족이었다. 두 번째 날 예냉 고기가 나왔다. 우선 등심을 포함해 모든 부위에 지방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마블링이 없는 고기였다. 그리고 살에 붙은 지방도 한우고기의 1/4도 되지 않았다. 대신 고기에 수분이 전혀 없고 단단했다. 제비추리라는 부위를 처음 구워보았다. 지방이 전혀 없는데 부드러우며 잡냄새가 일체 없고 맛이 좋았다. 풀로 키운 고기 맛은 대만족이었다. 원하던 맛이었다. 다음날 지인들과 시식회를 열었다. 갈빗살을 구워 먹었는데 모두 고기 맛에 놀랐다. 우리가 가졌던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마블링이 없어도 고기는 질기거나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꼬리곰탕을 끓이니 누런 고소한 지방이 조금 나오고 일체의 잡냄새가 업는 개운한 곰탕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배합사료라는 게 출현하기 전 이런 고기를 먹고 살았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육고기 식문화의 전통이었다. 조상들은 탕과 찜 요리를 즐겼다. 우리가 아는 설렁탕, 육개장, 갈비탕, 갈비찜, 곰탕, 떡갈비 등의 요리가 모두 풀로 키운 소고기로 만들어졌던 전통의 식습관이다. 우리는 지금 30년도 되지 않은 미국식 배합사료가 만들어낸 식문화에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최소한 다양성의 보장과 전통이 이어져야 하지만 다양성은 획일화로 변질되었고 전통은 왜곡되었다.

다시금 식량자급률 20% 국가의 이기적 식량 전략을 고민해 본다. 배합사료에 의존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전통의 지속 가능한 소 사육방식을 다시 맥을 잇는 게 옳은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농업은 결국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교역적 가치가 아닌 식량이라는 비교역적가치를 생산하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기후위기 식량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방안 중 하나가 풀로 소를 키우는 것이라고 본다. 소규모 농가들이 예전처럼 풀 사료로 소를 키우고 이것으로 자식 등록금을 만들었던 과거로 전환이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축산물직거래지원센터가 행정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농민의 소고기 직거래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정치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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