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탄 ‘총지사 석장승’ 방치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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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탄 ‘총지사 석장승’ 방치 이제 그만!
  • 서상용 기자
  • 승인 2020.04.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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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고 도승지 총지사 알리는 중요한 문화자원
영산강승달산 만남의 길 7월 개통 대비 “정비필요”

무안군 몽탄면 대치리 총지마을에 있는 총지사 석장승에 대한 보존과 관광자원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총지사 남장승
총지사 남장승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3호인 총지사 석장승은 총지사 옛 절터에서 500m가량 떨어진 총지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석장승이 지키고 있는 총지사는 천년 고찰로 신라 성덕왕 때 서역 금지국(金地國)에서 온 정명(淨明)이 승달산의 지맥인 백운산(白雲山)에 창건했으며 1016년(현종 7) 화재로 인해 절이 소실되자 백운산 밑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총지사 남장승
총지사 남장승

당시 총지마을일대는 모두가 총지사의 사역으로서 승려의 수가 800명, 암자는 9개소, 승방은 200동이었다고 할 만큼 호남 최대의 사찰로 손꼽힌다.

전설에 의하면 총지사는 1810년(순조 10)을 전후해 폐찰 됐다. 당시에 충청도 석성현감을 지낸 임면수(林勉洙)는 총지사 뒤에 아버지의 묘를 썼는데, 승려들이 이에 반대해 묘에 참나무 말뚝을 박았다.

임면수는 즉시 사찰의 철거를 명하였으나 승려들이 이에 불응하자 절에 불을 질러 폐사로 만들었는데, 승려들의 일부는 분신(焚身)하고 일부는 법천사(法泉寺)로 피신했다. 당시까지 이 절은 장성 이남에서 출가하는 사람들의 도승지(度僧地)였다. 지금은 몇 개의 주춧돌만 남았을 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총지사 여장승
총지사 여장승

이곳이 호남에서 제일가는 도승지였음을 알리는 것은 석장승 뿐이다. 총지사 석장승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해 얼굴 부위만을 형상화했다. 북쪽의 장승이 수염을 표현해 이를 남장승으로, 그리고 마주하는 남쪽의 장승에는 수염이 없어 이를 여장승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처럼 외형적인 구분과는 달리 인상은 오히려 여장승이 강인한 면을 풍기고 있다. 이들 장승의 이마에는 부처와 같이 백호(白毫)가 새겨져 있어 그 모습이 미륵불을 연상하게 한다.

총지사 여장승
총지사 여장승

크기는 남장승이 높이 142cm, 너비 56cm, 여장승은 높이 173cm, 너비 45cm이다. 장승의 제작연대를 밝힐 수 있는 명문이나 근거기록이 불분명해 정확한 시대는 알 수 없지만, 장승의 형태나 문헌을 볼 때 17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안군은 1987년부터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3호로 석장승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에 자리하고 있어 차량과 부딪힐 위험이 크고 안내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석장승의 가치에 비해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청계면과 몽탄면을 잇는 영산강-승달산 만남의 길이 오는 7월 17일 개통되면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 관광자원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총지마을 서현종 이장은 “도로가 포장되면서 석장승이 갈수록 파묻히고 있다”면서 “관광객들이 머물고 사진도 찍고 갈 수 있도록 정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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