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의 '길 따라 물 따라'-(10)]식영정! 가을이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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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호의 '길 따라 물 따라'-(10)]식영정! 가을이 물들다.
  • 무안신안뉴스 기자
  • 승인 2021.10.20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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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영산강 강변도로가 개통되고 올 봄부터 무안군에서 식영정 앞 수변공원에 유채꽃 밭을 만든 이후 식영정을 찾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휴일이면 식영정을 찾는 여객들로 수변공원 앞 도로가 차로 붐빈다. 휴일 몰려들 여객들을 감안해 아침 일찍 길을 재촉했지만 이심전심 이었는지 많은 여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영산강 수변공원
영산강 수변공원

자전거를 타고 함께 온 동호인들 무리,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중년들, 친구들과 함께 온 여행객들 등등 식영정은 가을을 찾아온 이들로 북적였다. 여객을 입구에서 처음 맞는 것은 무안군에서 나온 코로나 발열체크였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식영정을 찾았을 것이다. 주차 후 식영정 입구에 다다르니 먹거리를 파는 푸드트럭도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었다. 반가운 일들이다. 농촌에서 사람구경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사이의 소통자체가 통제되는 세상이 되다보니 사람이 몰리고 어우러지는 것이 걱정이 되기보다 우선 반가웠다.

영산강 수변공원
영산강 수변공원

식영정 앞 고수부지에 가을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올 봄 온통 유채꽃 노란색으로 물들어 여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식영정 앞 영산강 수변공원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수수한 코스모스 고운색은 가을 여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객들은 코스모스에 기대어 사진을 찍으며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영산강에 물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물안개 사이로 어부들은 작은 배에 의지해 고기를 잡는다. 가을 영산강은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강만을 바라보아도 시 한수 짓고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식영정에 올라서서 보니 굽이도는 영산강이 참으로 아름답다. 강 건너 나주 땅 동강은 수채화처럼 보인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식영정을 휘어 감고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 지형의 느러지를 감고 돌아 강은 함평 땅과 나주 땅으로 이어진다. 굽이도는 영산강의 모습이다. 식영정과 그 주변은 예전에 비해서는 관리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방치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품은 유적에 대한 가치만큼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식영정의 가치를 빛낼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식영정에서 바라본 영산강
식영정에서 바라본 영산강

옛날 강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을 때 식영정 앞에는 상괭이 떼가 놀았다고 한다.

상괭이 떼 뛰어오르던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강을 막기 전 식영정 앞은 고래가 뛰어놀던 바다였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교차수역으로 풍부했던 어족자원과 함께 이 강에 의지하고 살던 수많은 어부들이 만들었을 풍경도 잠시 그려 보았다. 예로부터 영산강 하류에서 나오는 해산물은 임금의 진상품이었다. 몽탄 유역에서 나왔던 어란과 숭어가 대표적이다. 지금 영산강에는 숭어가 살수 없기에 해제숭어가 유명하지만 어르신들 말씀에 의하면 영산강 숭어 맛은 천하일품이었다고 한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몽탄 숭어 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안의 겨울철 대표 특산물 숭어는 회로 유명하다. 지금 숭어회도 그 맛이 훌륭한데 몽탄 숭어는 얼마나 맛이 좋았을지 상상으로만 즐길 뿐이다. 숭어와 함께 장어와 게, 맛 등 바다에서 나오는 지속가능한 먹거리로 몽탄 땅 인구는 지금의 몇 배로 많았고 포구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릴 적 영산강을 막기 전 영산강 갯벌에서 게나 맛을 잡아오시던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강을 막기 전 영산강은 몽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바다를 포기한 대신 얻은 논과 논에서 나오는 쌀과 자연스레 비교를 해본다. 쌀을 통해 배고픔을 해결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잃은 것이 훨씬 큰 것 같다.

영산강 강변도로에 만들어진 조형물
영산강 강변도로에 만들어진 조형물

그림 같은 풍경을 품은 식영정은 전란이 없을 평시에는 양반 귀족들이 문예를 즐겼던 풍류터였고 전란시에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최후 일전을 벌일 때도 이곳 식영정 앞을 거쳐 갔을 것이다. 견훤이 이곳 영산강 지리를 이용해 파상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파군교는 여기서 하류지만 왕건의 군대는 휘어감은 느러지 지형 앞에서 당황해야만 했다. 아마도 당시 왕건에게 휘어감은 영산강은 두려움과 경외감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왕건은 그 두려움과 경외감의 표현으로 이곳을 꿈에 여울었다 하여 꿈夢 여울灘 꿈여울 몽탄이라 이름 지었다. 몽탄이라는 지명은 승자인 왕건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몽탄은 동강 몽탄과 함께 하나의 땅이었다. 강은 결코 한 방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명랑해전을 앞두고 선조로 부터 풀려나 백의종군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도 이곳을 거쳐 함평 나주를 둘러보셨다. 오랜 긴 전쟁으로 참혹했던 민초들의 삶을 마주하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왜적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셨다. 의로운 이들은 이곳 식영정 앞 군선 제조창에서 전쟁을 맞을 군선 제작에 결의를 모았을 것이고 비겁한 자들은 이강을 타고 전란을 피해 도주했을 것이다. 명랑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장군과 전라도 민중들은 영산강의 최 하류 고하도에 통제령을 세우고 왜적으로부터 방어선을 구축한다. 강은 쉼 없이 흐르고 강을 타고 인간은 역사를 이루어 간다.

석정포구
석정포구

내친김에 강변도로를 따라 석정포로 향했다. 식영정이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돌곶이 포구 석정포! 영산강을 대표하는 물류의 중심지 석정포는 강이 막힌 긴 시간동안 잠들어 있었다. 석정포 공원 정자에 여객들이 모여 막걸리 잔을 나누고 있었다. 행정에서 석정포의 역사를 잊지 않고자 전망 좋은 곳에 정자도 짓고 공원도 조성하고 나루터도 만들어 놓았다.

배가 사라진 석정포는 적막했다. 배 대신 온갖 쓰레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몽강리 옹기마을의 옹기 장인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제 옹기 가마만이 옹기촌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식영정에서 석정포에 이르는 강변 고수부지를 하나로 연결해 공원으로 조성하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산책을 즐기고 나룻배를 탈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여객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관광산업을 일으킬 객관적 자원을 넘쳐나는데 안목이 부족하고 전략이 부족하다. 아울러 석정포와 식영정, 우적동의 이내수신부묘소, 느러지를 연결하는 권역관광상품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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